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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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 꿈속을 거닐다


예전에는 핫한 식당, 쇼핑센터, 트렌디한 샵들을 주로 살폈다면 이젠 식물원,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같은 장소를 거닙니다.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저의 본질과 취향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콕 찍어 말해서 조금 김이 샜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멜론이 아니라 참외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참외는 참외답게!  

제가 누구인지,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올라갑니다. 우린 누구나 정해진 시간을 살 뿐이니까, 한계 효용의 법칙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가성비’,  ‘가심비’ 같은 소비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지만, 저는 ‘가시비’ 라고 말하고 싶어요. 가격 대비 시간. 시간을 내가 원하는 곳에 더 사용할 수 있다면 비용을 좀 더 지불하는 거예요.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식물원이 가시비가 아주 좋았습니다. 3500평 정도로 식물원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인데, 나비정원, 야자수 온실, 3개 기후(관엽, 늪, 사막)의 온실이 있어요. 같은 면적 안에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어, 꽃밭에 뭉게뭉게 꽃구름이 피어 있었어요. 식물의 높이도 정밀하게 심고 관리해 시선이 닿는 곳은 어디든 회화 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꿈속 같은 공간.

암스테르담 식물원은 1638년에 설립된 식물원으로, 동인도 회사에서 전 세계의 식물들을 조금씩 옮겨 심었다고 해요. 무려 400년이 넘은 식물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식물의 종류와 식재, 관리 상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물을 진열 관리하는 방법이 새로웠어요. 디자인 대학과 협업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의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여기서는 어디서도 보지 못 한 것들이 있어요. 왼쪽 사진을 보면 다육이를 식재한 넓은 화분인데, 나무 블록으로 만들어 전체적으로는 건물 조감도를 내려다보는 듯합니다. 오른쪽은 식물과 뿌리를 진열하는 진열장인데, 특이하지요. 예쁜 화분을 찾기 어렵고, 화분에 담았다 해도 여러 개를 한꺼번에 옮긴다거나, 작은 화분을 진열하고 감상하는 방법이 한정적입니다. 사진에 첨부한 화분과 식물 진열을 봐주세요. 수작업으로 만든 걸 볼 수 있어요.

이 화분들을 보니, 창경궁 대온실에서 본 플라스틱 화분들 생각이 납니다. 창경궁 대온실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며, 등록 문화재입니다. 일제 시대에 지어져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시설입니다. 아픈 역사를 담고 있지만 건물은 조형적으로 아름답습니다. 1년 8개월의 보수 공사 후 재개장했을 때 방문했었는데, 귀한 식물들도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져 있었어요. 비단옷에 하얀 고무신을 신은 것 같았습니다. 보다 아름답게 연출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었어요.

왼쪽은 수작업으로 맞춤 제작한 다육 화분 트레이, 가운데는 암스테르담 식물원 내부, 오른쪽은 식물 진열대.

나비 온실이 있어요.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나비의 날갯짓 소리. 아주 낮고 약하게 치는 타악기 소리가 낮은 저음으로 따뜻하게 들립니다. 눈을 감고 한참을 들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졌거든요. 제가 지나가도 나비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저를 친구로 여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나비가 날아다니는 조용한 온실은 꿈같았어요. 나비 온실은 굉장히 따뜻하고 습한 공간이에요. 금세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올라옵니다. 사진 찍기도 포기하고, 그저 소리를 음미했습니다.

나비 온실. 나비

저는 흰색 꽃이 피는 꽃기린을 키우고 있거든요. 일 년 내내 꽃을 피우는 기특한 식물입니다. 줄기가 잔 가시로 덮여 있어, 한 번은 손톱 아래에 가시가 박혀 애를 먹었던 적이 있어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식물인데, 이곳에서 빨간 꽃을 피우는 꽃기린을 보고 반했습니다. 몇십 년은 키운 것 같아 보이는데, 식물의 크기가 커지니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집니다. 선인장 정원도 재미있었어요. 곳곳에는 식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왼쪽은 꽃기린, 오른쪽은 선인장

식물원 안의 카페에도 큰 야자수가 두 그루나 있습니다.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아주 맛있었어요. 사진은 홀이 여유 있어 보이지만, 금세 자리가 꽉 차서 앉아 있기 눈치 보입니다. 카페로 시작해서 기프트 샵으로 끝나는 동선입니다. 가드닝 책, 플라워 책이 수준 있고,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 어에요. ㅜㅜ

카페. 친절하고, 맛있고, 예뻐요!
기프트샵. 식물에 대한 모든 것이 알차게 갖춰져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티카드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바로 옆에, 동물원이 있는데 한꺼번에 들러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저흰, 동물원은 스킵했는데, 디테일이 좋아서 감탄했습니다. 동물원은 동물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디자인을 같이 보여주고 있어요.

영감을 채우는 여행 네덜란드 중에서


작가 정재경의 초록 생활

더리빙팩토리 출간작가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저자
책 세 권 쓴 작가, 16년 째 디자이너, 화훼장식기능사, 도시농업 전문가, 아름다운 실용주의, 매일매일 기분 좋게, 오래오래 함께 하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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