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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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도시 로테르담에 살고 싶다


사실 로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꽂혀서 가장 기대하게 된 곳 중 하나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공습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는데, 원래 있던 걸 복구하기보다는 아예 새로 짓고 만들어나가는 방향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건축 박람회장’이라 불릴 정도로 특이한 현대 건축물이 많다고 하는데. 전통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유럽 땅에서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다. 

Blaak역에서 나오면서부터 심상치 않은 주변 광경에 호들갑을 떨었다. 그냥 기차역 출구를 나왔을 뿐인데 여기 무슨 엑스포 전시장 같았다. 그렇게 나의 로테르담은 시작부터 여행보다는 ‘우와’ 하면서 보는 관람에 가까웠다. 

사실 당일치기로도 충분했을 로테르담에서 꼭 1박을 해야 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바로 로테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큐브 하우스’에서 직접 묵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큐브 하우스 호스텔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예약부터 해놨다. 내가 진짜 이곳에 왔다니! 큐브 하우스 실물 영접한 노란색 덕후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실물 영접한 소감은 ‘아 예쁘다’, ‘이게 현대 건축이다!’. 하루 묵어본 소감은 ‘아 실용성은 개나 줬구나’. 참고로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방이 각져있어서 가구 놓기도 애매하고, 한 방 안에서도 천장 높이가 다 달라 생각보다 더 불편하다. 왼쪽 2층 침대를 쓰려고 올라가 봤다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오른쪽 2층 침대로 피신했다. 딱 1박만 해서 다행이지, 더 있을 곳은 못 됐다. 


한국어를 전공했다며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걸어온 독일인 룸메이트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도시 구경에 나섰다. 중세 건물 중 유일하게 흔적이 남아있다는 성 로렌스 교회. 이 도시에 홀로 남은 옛 건물이지만 다른 새 건물들, 특이한 조형물들과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주위에는 ‘어떻게 저렇게 지을 생각을 다 했지’ 싶을 정도로 특이한 건물의 연속이었다. 지붕이 뾰족하든 둥글든, 창문이 네모나든 세모나든, 뭐든 하나는 제대로 튀어야 하나보다. 여기에 그냥 뻔한 건물 짓는다고 하면 아예 시에서 허가를 안 내주나. 예측 가능한 게 하나도 없으니 그냥 길거리 걸어 다니며 구경만 해도 신기한 거 투성이, 재미있었다. 

그 독특한 건물들 사이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물은 바로 노란 파이프가 달려 있는 이 건물. (역시 노란색 덕후) 멀리서 보면 건물 전체가 크루즈 배 모양을 닮았다. 레스토랑 겸 카페로 추정되는 2층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도 행복해 보였고.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졌는데. 

이곳의 정체는 바로 공공 도서관이라는 사실! (기절) 아니 도서관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퍼블릭 라이브러리니까 나도 한번 들어가 봤다. 시설 좋은 건 당연하고,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디테일들이 넘쳐나더라. 예를 들면 CD/DVD 코너의 1인 감상실이 거의 1인 영화관 수준이고, 음악 코너에는 악기별로 연주 악보가 정리되어 있고, 열람실 책상마다 스탠드 기울기를 직접 조절할 수도 있고.. 등등 포인트가 너무 많다. (또 기절)

대충 느낌만 보려다 1층 로비부터 5~6층 열람실까지 샅샅이 보느라, 도서관 구경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썼다. 그리고는 생각했지. 아, 나도 여기서 책 보고 공부하고 싶다. 이 도서관 다니고 싶다.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이 모든 걸 누리고 싶다. 여기 살고 싶다!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의 항구가 있는 항구도시로도 유명하다. 전에 마르세유 갔을 때도 언급했듯이 나는 항구도시 특유의 느낌을 좋아한다. 물가와 잘 어우러지는 도시는 살아있는 듯한 생명력이 있고,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사방이 육지인 도시보다 더 매력적이다. 

볼수록 로테르담은 그동안 내가 봐온 전형적인 유럽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가본 도시 중에서는 오히려 저 멀리 지구 반대편, 호주 멜버른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모던하고 세련됐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Blaak역 쪽으로 돌아왔다. 특히 이 광경을 보고 로테르담이 ‘미래도시’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먼 비현실적인 미래까지는 아니고, 한 2048년쯤의 도시가 이런 모습 아닐까 잠깐 엿보고 온 듯하다. 초등학교 때 과학 상상화 그리기 같은 거 하면 다들 이런 풍경 그리지 않았나? 


레스토랑을 비롯해 푸드코트와 먹거리가 넘쳐나는 이 곳은 Markthal, 시장이란다. 꼭 코엑스 전시관이나 엑스포 박람회장 같이 생겼는데 말이다. 가장 평범한 일상 공간마저 특별한 이벤트 장소처럼 예사롭지 않은 곳이 바로 로테르담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바로 이 건물이 사실 거대한 아치형의 아파트 건물이라는 사실. 저 화려한 그림의 벽면과 천장 군데군데 나있는 구멍이 아파트 각 세대의 창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아파트 1층 상가에 마트가 있을 수는 있는데, 이런 형태로 가능할 거라곤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냐고. 

아무래도 로테르담 덕후가 되어버린 것 같다. 도시 곳곳 거리마다 놀라움의 연속인 곳. 단순히 특이한 건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이 뻔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예측 불가능해서. 비록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그 힘은 크게 느껴졌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이 도시의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이 아닌 실제 삶이라면, 매일 아침 집을 나서 출근하고 사람들 만나 어울리는 그런 일상의 풍경이 이런 모습이라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여행하며 좋아하는 도시가 된 곳들은 많지만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도시는 많지 않은데. 로테르담에서는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곳. 뭐 생각은 자유니까. 그런 상상을 맘껏 펼치며 맥주를 마저 비우고 들어왔다. 자유니까. 

브런치 북 디스이즈 해프닝 중에서


글쓴이 이리터

기록하는 사람, archivist /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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