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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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흐로닝언

대마초에서는 우울과 근심의 냄새가 난다. 이를 피우는 사람들의 내면이 연기로 뿜어져 나오는 듯이 까맣고 찐득찐득한 형체가 흐르는 그런 냄새. 암스테르담에 가면 메트로에서 내려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전에 그 까만 형체는 몸 전체를 휘감는다. 냄새가 심하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경험하니 정말 토가 나올 정도였다. 충격에 휩싸인채로 비자를 발급 받으러 시청에 갔다. 일처리를 끝내고 나를 보러 올 수 없게 되었다는 친구의 메세지를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곤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며 싸구려 호스텔로 향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냄새가 느껴진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기분 나쁜 지독한 냄새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미안해. 자꾸 널 실망시킨다.

평소였으면 바로 답장을 보냈을테지만 몸도 힘들고 속상해서 답장을 보낼 기분도 아니었다. 캐리어 바퀴가 바닥의 돌에 치이고 쓸려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8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0분을 걸어 겨우겨우 입구를 찾았다. 대낮인데도 호스텔에 딸린 바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체크인을 위해 기다리며 미룬 답장을 했다. 괜찮아. 혼자 다니지 뭐. 바로 답장이 온다. 미안하다는 뜻이다.

나 밉지?

아니라고 보냈지만 거짓말이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휴대폰 화면이 자주 깜빡거렸다. 메세지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설명에 집중해야 했다. 

뭐 피울거면 저기서 피우면 돼요.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니 삼삼오오 모여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 다들 웃고 있는데 새어나오는 냄새는 역시 우울하다. 

피울거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격하게 저으니 데스크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여긴 암스테르담이에요.

그 말에 거짓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하룻밤에 50유로나 냈는데 시설은 엉망이다 못해 감옥 수준이었다. 방 문을 열었는데 또 그 냄새가 났다. 역한 냄새가 싫어 빠르게 짐을 두고 밖으로 향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수많은 불빛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뭐 해?

오늘 자신의 일과에 관한 6분짜리 음성메모가 와 있었다. 이를 들으며 정처없이 걸었다. 교통카드를 잃어버려 찾다가 기차를 놓칠 뻔 하고, 운전면허 레슨에 늦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키를 부모님 집에 두고 와 다시 그 먼 길을 되돌아 가야 했다는 친구의 하루. 너도 너의 근심과 우울을 연기로 뿜어낸 적이 있을까. 한없이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이런 순간에는 친구와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게 실감된다. 

네덜란드에 온 걸 환영해. 라는 말로 끝나는 음성 메모를 다 들을 때 쯤 더이상 도시를 가득 채우는 그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닌데 내 코는 벌써 네덜란드에 적응을 한 것일까. 풀린 눈으로 떠드는 사람들과 빨간 불빛이 켜져 있는 거리를 걸으며 과연 내가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게 네덜란드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설상가상 3일 내내 날씨까지 좋지 않아 기분이 엉망인 채 여행을 마무리하고 흐로닝언행 기차에 올라탔다. 끝없는 들판을 바라보며 설렘보다는 실망감을 느끼며 두 시간 반을 달렸다. 흐로닝언은 아주 작은 도시였다. 작다는 말을 인터넷에서도, 친구들에게서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예상보다 더 작았다. 일생을 대도시에서 살아 온 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그 아기자기함이 그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만난 흐로닝언은 ‘시골’ 바이브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또 조금 실망했었다. 그래도 말없이 내가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신 아저씨와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은, 기차 안의 학생들 덕분에 또 앞으로의 반 년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네덜란드와 흐로닝언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맨 위의 사진은 내가 흐로닝언 생활을 시작하고 한 참 지나,  4월 쯤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혼자 자전거를 타고 시티 센터로 가는 길에 매일 지나치던 운하가 특별히 예쁘게 느껴져 자전거에서 내려 찍은 사진이다. 아침이든 낮에든 밤에든 흐로닝언의 운하 근처에는 사람들이 있다.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 산책을 하다가 쉬고 있는 사람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학생들까지. 도시에서 가장 예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네덜란드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다른 이유는 맛있는 치즈…) 운하가 아주 많이 그립다. 코로나로 인해 내가 기대한 교환학생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확실했음에도 선뜻 떠나겠다 이야기하지 못하고 결국 머물기로 결심했던 것은 물론 내가 예상보다 더 사랑하게 된, 주변 사람들 때문인 것도 있었으나 이 도시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끔 거리에서 맡을 수 있는 그 우울과 근심의 냄새 (여전히 역겹다고 생각하지만), 날씨 좋은 날의 공원, 마켓에서 정겹게 인사를 건네는 과일가게 아저씨, 기숙사 뒷마당에 놀러오던 고양이들, 홍대 거리보다도 작은 시티 센터에서 우연히 만나는 아는 얼굴들.

이 모든게 내 일상이 되어, 사라지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래서 떠나지 않았고 후회도 없다. 건강하게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앞으로 이렇게 젊고 사랑스러운 도시에서 다시 살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흐로닝언에 사는 친구가 가끔 내가 좋아했던 곳들의 사진을 보내주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리고 아마 조만간은 갈 수 없겠지만, 다시 네덜란드에 가게 되면 그 역겨운 냄새까지 그리웠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인상 흐로닝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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