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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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 소녀는 어떤 액자에 담겨 있던가요?

여행 계획을 수정했다. 암스테르담 근교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 대신 헤이그(Den Haag, The Hague)로 가서 한 소녀를 만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민박집에서 미역국 정식을 든든히 먹고서 냥씨와 중앙역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이그행 기차가 도착했다. 두꺼운 안개를 뒤집어쓴 모양으로 헤이그는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곳에서 냥씨와 나는 안개를 뚫고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어느 사연 있는 콤비’처럼 걸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듯 ‘마우리츠 휘스/하우스(Mauritshuis) 미술관’으로 향했다. 

수상 집무실 옆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외관과 내관 모두 고풍스러웠다. 렘브란트를 비롯한 네덜란드 작가들의 그림들을 visual analysis라는 방법론을 소개하는 등 색다르게 연출하고 있었다. 미술 작품만큼이나 아름다웠던 미술관 내부는 마치 동화 속 무도회장을 방불케 했다. 요란하지 않은 미술관 내부 덕분에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림을 보는 방법이 정해져 있겠느냐, 는 마음가짐으로 미술관을 드나드는 습관을 익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나만의 감상법으로 작품들을 마주했다. 나만의 감상법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림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액자를 사용했는가’하는 질문이었다. 어떤 액자에 담느냐에 따라 작품이 확 살기도 꽥 죽기도 한다. 때문에 나는 제 아무리 마음에 드는 그림일지라도 액자가 그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금세 집중력을 잃고서 다른 그림을 보러 가곤 했다.

루브르의 주인공이 <모나리자>이듯, 이곳의 주인공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자주 동명의 영화를 보여주곤 하셨는데, 그 영화 덕에 그 그림과 친숙해질 수 있었다 (스칼렛 요한슨이 그림 속 소녀와 꼭 닮아서 정말 많이 놀랐다). 비단 영화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그 미적 가치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림인 만큼, 아침 일찍 찾아간 미술관에서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걸려 있는 전시관에서는 약간의 정체가 있었다.

가까이서 본 소녀의 표정은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신비로웠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걸까, 모델을 하느라 지친 걸까, 두 눈에 담긴 메시지가 진주 귀걸이에 혹 투영이라도 된 건 아닐까 등……. 그림을 보는 내내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참고로 그림을 담은 액자 또한 훌륭했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과한 색감이 돋보이진 않는 액자가 소녀가 풍기는 분위기와 꼭 맞았다). 소녀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냥씨와 나는  미술관을 나가기 전 괜히 한번 더 소녀를 봐야겠어, 하고선 전시실로 향하는 계단을 다시 오르곤 했다. 

진주 귀걸이 소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마음먹으며 찾은 헤이그였다 그런데 웬걸, 소녀와 함께 전시된 그림들 또한 너무 멋졌다. 마우리츠 하우스의 차분한 연출과 잘 어우러졌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 오늘 하루 멋졌어’라며 이미 일기를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자꾸만 눈길이 가는 그림 한 점 정도 떠오르는 게 있을까요? 저는 최근 들어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에 푹 빠져 있답니다. 춤을 추는 건지,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아파하는 건지, 별이 되어 날아가는 건지, 도통 무얼 하고 있는 건지 파악하기 힘든 자세를 한 한 사람이 보랏빛 바탕의 캔버스 전면에 등장하는 그림이에요. 제목이 <이카루스>여서 그런지, 인간의 갈망/욕망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결코 닿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상향)에 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소망 어린 마음을 함께 보게 됩니다. 때문에 친구의 포스터 북에서 <이카루스> 한 장을 떼어 신발장 앞에 붙어 두었어요. 어디론가를 향해 내달음질 하는 하루의 출발지점인 신발장에 꼭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되었거든요. 

와플의 나라에서 유럽연합을 배우다 중에서


글쓴이 프로이데

A (would-be) storyteller. 소개글의 괄호는 제 최소한의 예의, 양심입니다. 긴글의 지닌 힘을 믿고, 헤르만 헤세와 이동진, 이승우 작가를 즐겨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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