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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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소피의 집에 도착하다

소피와 재회하다

2019년, 나는 스페인에서 거주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주로 스페인어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내가 언어나 시험 준비 위주의 학원이 아닌 액티비티(활동) 중심의 학원에 다닌 덕분이었던 것 같다. 대화와 수다를 좋아하는 내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소피는 그중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였다.

우리는 아인트호벤 공항에서 재회했다. 소피가 차를 운전해 공항에서 자신의 집까지 나를 픽업해줬다.

소피가 사는 곳인 아주 작은 동네, Culemborg로 가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했다. 소피는 그동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여행 때문이었다. 소피는 곧 뉴질랜드로 떠날 예정이었고 그 외에 우리나라를 들리는 것과 남미를 여행하는 것 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길 했다.


소피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피의 어머니, 수잔을 만났다. 수잔은 달라진 게 없었다. 발렌시아에서 만났을 때처럼 편안하고 다정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였다. 나는 짐을 풀고 발렌시아 공항에서 산 초콜릿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건 성공적인 선물이었다. 소피의 어머니가 사진을 찍어 고마워,라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포스팅까지 했으니까. 행성 모양의 초콜릿도 있었던 그 초콜릿 세트는 정말로 예뻤다. 수잔이 찍으니까 초콜릿이 더 빛났다. 그때 알게 된 것인데 수잔은 네덜란드의 사진가였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들의 집은 몹시 세련되고 근사했다. 거실의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시야가 탁 트여 있었고 거실 중앙에 회색 소파가 있었다. 회색 소파 뒤, 창문 앞에 붉은색의 1인용 소파와 남동생의 그림이 놓여있었다. 그들의 집 곳곳에 소피 남동생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소피의 남동생,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근처 시설에서 살고 있었다. 부재의 무게는 언제나 더 무겁다. 그의 그림들이 그의 부재를 자꾸만 현장으로 불러왔다. 물론 소피네는 주기적으로 시설에 찾아갔고 남동생도 주기적으로 집에 들렀다. 그들은 행복하다. 단언하건대 소피네 가족의 행복은 정말로 단단하다. 나는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단단히 사랑하는지 안다. 다만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기에, 내게 부재자의 그림은 강력했다.


붉은 소파와 소피의 남동생이 그린 그림

소피는 나를 위해 피아노를 쳐주다가 – 두 곡을 쳐주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루마의 곡이었다. 정말이다. 이루마는 해외에서 무척 유명하다. 그가 한국인인지는 거의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 갑자기 장난스럽게 쾅 피아노를 내려치며 곡을 끝냈다. 아주 예쁜 소피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는데, 영상의 마지막은 장난기와 부끄러움으로 상기된 소피의 웃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소피의 동네를 구경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동그라미 모양의 치즈가 각 선반에 차곡차곡 놓여있는 치즈 가게도 갔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다음 날 가게 된 암스테르담 골목마다 치즈 가게들이 보였는데 소피 말론 암스테르담의 가게들은 관광객을 위해 꾸며진 용도가 더 크다고 했다. 실제로 치즈를 팔려고 하기보다는 치즈 가게라는 명분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것저것 치즈 굿즈들을 달아놓은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소피의 동네에 있던 치즈 가게는 진짜라고 했다.

언제나 작은 것들이 진실을 말한다.

치즈 가게에서 우리는 뜻밖에 다시 수잔을 만났다. 그녀는 치즈를 구매하고 있었다. 그녀가 치즈를 구매하는 동안 나와 소피는 아주 작은 사각형 모양의 조각들로 잘린 치즈를 두 번 주워 먹었다. 다른 종류의 치즈를 각각 한 번씩, 두 번. 하나는 클래식한 노란 치즈였고 다른 하나는 초록색 반점이 섞인 치즈였다. 후자는 좀 썼나 독특한 맛이 났었다.

그동안 유럽의 많은 곳을 다녀 봤지만 그런 치즈 가게가 아주 흔히 보이진 않았는데 네덜란드엔 꽤 많이 보였다. 그러한 치즈 가게를 네덜란드에서만 볼 수 있냐고, 나중에 암스테르담에서 물어봤을 때 소피는 스위스에서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사실 매우 작고 아름다운 나라였는데 그 나라 고유의 음식 문화는 딱히 발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네덜란드의 전통음식을 이것저것 물어보면 소피는 설명하다가도 자꾸 근데 그건 그 나라가 더 유명해, 라면서 벨기에나 스위스 같은 나라의 이름을 댔기 때문이다.

나와 소피는 다시 치즈 가게를 나와 수잔과 헤어져 동네를 돌아다녔다.

소피의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일요일이 아니라서 문을 닫은 커다랗고 투박해 보이지만 예뻤던 교회의 외관도 지나쳤고, 아이스크림 가게 옆의 작고 더 화려했던 교회의 외관도 지나쳤다. 작고 화려한 – 뭐 엄청나게 화려하진 않았다 – 교회의 밑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초록색 문이 보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우린 함께 셀피를 찍었는데 둘 다 바보 같이 나왔다. 그 작고 소박하고 깨끗하고 인형 마을처럼 예쁜 길을 걷는 동안 누군가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신부가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수잔이 만든 퐁듀를 먹었다. 기다란 꼬챙이 같은 것으로 빵을 찍은 다음, 불 위에 얹어진 항아리에 담긴 노란 치즈를 빵의 겉에 돌돌 말아야 했다. 아주아주 어려워서 나는 끝까지 실패했고 어쨌든 포크와 손가락까지 동원해 어영부영 잘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수잔의 초록 수프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물어보려던 걸 까먹었다. 나중에 소피에게 물어봐야지. 길게 썰린 파프리카도 치즈에 돌돌 말아먹을 수 있었다. 치즈가 느끼할 땐 둥근 모래시계 모양의 초록 오이피클을 먹었다.

모두 수잔이 만든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네덜란드 전통 음식이라 말했고, 동시에 그 음식의 진짜 유래를 말해주며 장난을 쳤다. 퐁듀는 스위스 것이었고, 초록 오이피클은 모든 나라에 있는 것이었다. 소피의 아버지가 흰색 락교를 보여주며 이것도 네덜란드 전통 음식이라고 했고 나는 막 웃으면서 이거 일식집에서 엄청 본 거라고 말했다. 아무튼 수잔의 음식은 아주 아주 맛있어서 나는 계속 치즈를 돌돌 말아먹었다.

집안이 어둑어둑하고 양초 불빛만이 집을 밝힐 때까지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현대 사회에 대한 가벼운 담론이었다. 옛날에는 네덜란드에 정말이지 많은 직업이 있었고 늘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 네덜란드의 겨울에는 언제나 길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탔는데 이제는 비가 올 뿐이라는 것, 그런 이야길 했다.

그러고 보면 네덜란드 여행 동안 소피와 있으면서 아주 많은 이야길 했다. 우리의 역사과 그들의 역사가 닮은 점이 많다는 것, 그러니까 피해국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것, 이를 테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말하는 황금시대는 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지배할 때라는 것.

퐁듀를 먹은 다음에는 티비를 봤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 회색 소파에 둘러앉아 티를 마셨던 거 같다.

소피와 함께 네덜란드를 여행하다 중에서


이서아_에세이스트

스페인에서 거주하며 여러 유럽 국가들과 아프리카의 모로코, 그리소 사하라 사막을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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