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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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와 보낸 여름,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필요한 성장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은 일주일간 외딴섬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시원하게 부딪히는 파도, 갯벌을 걸어가는 앙증맞은 바다생물들, 휴가지의 설렘과 낭만, 그리고 따사로운 햇볕. 네덜란드의 데르스헬링 섬에서 벌어지는 두 아이의 귀엽고 엉뚱한 행동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아 정체성, 가족의 소중함, 타인과의 관계 등 아직도 성장 중인 어른이(어른 아이)에게도 필요한 성장영화다.


섬에서 보낸 사랑스러운 일주일

한적한 섬으로 가족끼리 휴가 온 10살 샘(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나는 누구인지, 내 미래는 어떨지, 휴가지에 와서 죽음을 생각하는 진정한 4차원이다. 그러다 문득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샘은 마지막 남은 공룡은 혼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외로웠을까 아니면 무서웠을까? 전지적 공룡 시점에서 생각해 보기로 결심한다.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틸컷


한 편, 5차원 소녀 테스(조세핀 아렌센)는 섬의 유일한 병원에서 일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 저세상 텐션의 11살 테스는 우연히 지나가던 샘을 붙잡고 살사를 추자고 제안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꽃을 사러 가자고 나선 길에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손님을 맞으러 간다. 대체 이 아이에게 왜 끌려다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찰나, 샘은 테스 엄마가 운영하는 라 카사 별장에 도착해 커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테스가 좀 이상하다. 아까의 당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은 어디 가고 수줍음 많은 이상한 테스만 있다.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던 테스는 말다툼 끝에 샘을 버리고 혼자 떠나 버린다. 아무도 없는 길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샘은 비로소 지구 마지막 공룡의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다. 오롯이 혼자되어보니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지막이 떠올랐고 그러자 모두가 사라진 세상에서 긴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는 몽상이 커진다. 더 이상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외로움 적응 훈련’에 돌입하기로 결심한다. 어떡하지, 다소 늦은 건 아닐까. 고민할 시간이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샘은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간다. 바닷가 쓰레기를 주워와 소소한 막사를 차리고, 외로움에 적응할 루틴을 세우며 적응 시간을 늘려갔다. 그랬다. 세상은 혼자 왔다가 홀로 돌아가는 것이다. 힘든 시간이겠지만 조용히 견뎌야만 했다. 이렇게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과연 외로움은 연습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샘은 알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테스의 마음도 세상을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어 작아지기만 한다.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틸컷


매일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살면서 성장을 거듭한다. 100세 철학가로 알려진 김형석 교수는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80세가 넘어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이라고 했다. 본인도 10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삶과 배움의 성찰을 논했다. 

영화는 성장기 아이를 전면에 내세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유한한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유쾌한 톤으로 그려냈다. 특히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외로움을 적응하려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쌓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인생을 낭비하는 대신 우리가 삶에서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행복은 가까이에서 쌓는 소소한 일상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샘은 마냥 노는 게 좋았던 유아동기를 지나 생각이 깊어지는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는 본격적으로 ‘나’와 ‘세계’, ‘삶’과 ‘죽음’을 탐색하게 된다. 영원히 지속하리라 믿었던 가족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해체된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인지할 때다. 반면 테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확립이 시작된다. 아빠의 부재는 내 존재의 의문이고, 이는 세상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다. 두 아이는 자꾸만 떠오르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전혀 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샘은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문 끝에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알아차린 ‘생각하는 인간’이다. 반면 테스는 아빠를 알고 싶은 마음에 잔뜩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는 ‘행동하는 인간’이다.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졌지만 협업으로 헤쳐나갈 긍정적 태도를 일깨워 준다. 삶은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것보다 직접 부딪치며 알아가려 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 <테스와 보낸 여름> 스틸컷



영화는 네덜란드의 신예 감독 스티븐 바우터루드과 두 배우의 데뷔작이다. 네덜란드 아동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호평을 계기로 전 세계 통산 16개 부문 수상을 기록한 주목할만한 감독이다. 

밝고 따스한 분위기에 상반되는 죽음, 외로움이란 무거운 주제조차 꿈같은 일주일 속에서 사랑스럽게 빛난다.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내나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접근한다. 혼자서 살아갈 방법만을 고민하다가 함께 쌓아올린 아름다운 추억을 얻은 선물 같은 영화다. 여행이 어려운 시대에 만난 짧고 굵은 여름휴가를 다녀온 거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전염병의 위기 앞에서 낙심하고 포기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값진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활용해 봐도 좋겠다.

평점: ★★★★☆

한 줄 평: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브런치 매거진 장cine 수다 중에서


쓰는 인간 장혜령 작가소개

씀 : 커피고 인생도 글도 쓰다

영화진흥원회 대한민국영화통신원
아트나이너 7,8,9기
오마이뉴스에 영화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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