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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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무질서의 공존, 암스테르담 그리고 피터

암스테르담은 참 요상한 도시였다. 성매매와 대마초가 합법인 곳. 대마초 외에도 온갖 약물이 난무하는 곳. 온갖 약물 난무하기로는 캐나다 밴쿠버도 뒤지지 않지만 암스테르담만큼 대놓고 걸어와서 코카인을 파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분명 소돔과 고모라가 연상되는 도시인데도 사람들이 살고,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점은 내게 정말 신비롭게 다가왔다. 내가 암스테르담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2시간이 채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이 도시를 더 느끼고 싶었기에 나는 밤을 새는 방법을 택했다.

나의 커피로 암스테르담에 건배를 보낸다.

암스테르담 역과 가장 가깝고 저렴한 호스텔을 잡았더니, 앞뒤로 사창가에 바로 옆 옆 가게에서 모로코 사람들이 코카인을 판매한다. 저 검정 옷의 사나이도 코카인 판매책이다.

암스테르담 밤거리에 오도카니 앉아 사람 구경, 풍경 구경을 하고 있는 내게도 끊임없이 코카인 딜러들이 다가와 자신들의 상품을 권유했다.

그러나 내가 이 밤거리가 걱정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남자 덕분이었다. 내가 머무르는 곳의 매니저 피터.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코카인 딜러들이 내게 접근해올 때마다 밖에 나와 “얘는 코카인을 하지 않는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피터의 으름장에 더 이상 상품을 들이대는 딜러는 없었다. 피터는 나에게도 끊임없이, 절대 코카인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마치 아빠.

헝가리 출신이나 암스테르담에서 생활한 지 5년이 넘었지만 대마초도, 코카인도 그 어떤 약물도 해본 적이 없다는 피터. 이 곳에선 합법인 매춘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피터. 그에게서 진정한 남자의 기운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피터는 호스텔의 말레이시아 브렌치에서 일하며 말레이시아 거주증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주증 갱신 때마다 마주해야 하는 인접국가 싱가포르 이민국 직원들이 하도 까다롭게 구는 것에 신물이 나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고.

그때 하우스메이트로 같이 살던 커플이 한 명은 한국인 여자, 한 명은… 어디였더라 유럽인이었다고 했다. 둘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자기도 한국 여자들은 착하고 친절해서 좋다고 했다. 가끔 그 한국 여자분이 음식도 나눠줬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한국음식도 먹을만하고 맛있었다고. 또 이런 데서 한식을 만나게 될 줄이야. 반가워라. 피터는 나한테도 요리를 하냐고 물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요리를 안 하는 편이라 “미안, 난 못함”이라고 했다. 대신 한국의 외식문화가 얼마나 잘 발달했는지에 대해 자랑했다. 피터는 그 점에 있어서는 아시아가 부럽다고 했다.

그리고 또 말레이시아가 그리운 건 집이 그립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경관 유지상 집의 증축이나 개축이 어려워 족히 백 년은 된 나무집에 살고 있는데 삐걱대는 소음도 그렇고 방마다 방음도 잘 안돼서 불편하다고. 관광객들에겐 아름다운 그 오래된 집들이 막상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어디서든 ‘현실은 잔인하다’는 말이 적용이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집을 못 고친다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게다가 암스테르담은 더 커질 거다. 너도 알 거다. 브렉시트. 금융사들이 여기로 몰려들 거다.”

(이상하게 피터의 영어는 내 귀엔 ~다. ~다.로 끝나는 것처럼 들렸다. 그의 군인 같은 성격과 어투 때문이었을까.)

“프랑크푸르트로 간다는 얘기도 있던데?”


나의 반론에 피터는 살짝 당황했다.

“그쪽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더 가깝다. 아니면 로테르담으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금융회사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암스테르담으로 옮겨오려 할 거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세금 내는 걸 싫어한다.”

야간 근무라서 심심했던지 그는 자주 밖에 나와 담배를 피웠고 덕분에 피터와 나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우리는 뭔가 요상하게 취한 무지개색 옷을 입은 어떤 여성을 마주하게 됐다.


자신을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밝힌 그녀는 술에 하도 취해 길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피터에게 호스텔에 잠깐 앉아있다가 가도 되겠냐고 했다. 피터는 들어오라고 했고 나도 피터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의심스러웠다. 그녀의 영어 발음이 아일랜드 발음이 전혀 아닌 것 같았거니와 그저 길거리 부랑자가 술이나 약에 돈을 다 써서 호스텔에서 대충 하룻밤 때우고 아침에 나가려는 의도로 들이닥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피터를 따라 들어가 내 나름대로 피터를 지켰다.


그녀는 내내 피터에게 암스테르담이 정말 아름답다고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피터는 익숙한 듯 그저 대충 답변하고 그녀에게 그녀가 묵는 호텔 이름을 적게 한 뒤 택시를 불렀다. 내가 암스테르담에 머무른 바로 다음날이 암스테르담의 게이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어서 벨기에나 아일랜드 등지에서 퍼레이드를 즐기러 온 타지 사람들이 많았다. 유로존 내에서야 이동이 편하니까.

피터는 꽤 직접적으로 그녀에게 “너도 게이냐?”라고 물었는데 그녀는 “아니야~ 아니야~ 나는 그냥 서포트하러 온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고 나의 의심이 무색하고 미안하게도 택시가 오자 그녀는 순순히 택시에 올라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뒤에 피터에게 다가가 내가 말했다. “나는 사실 쟤가 의심됐어. 술이 아니라 약에 취한 거 아니야?”

피터는 시크하게 말했다. “아니다. 쟤는 아이리쉬라서 그렇다.” 그리고 덧붙였다. “쟤네는 술 마시고 저렇게 되는 게 일상이다.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피터는 약에 취하면 저것보다 더 심한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약을 섞어 먹으면 최악의 경우가 온다고 했다.

“한 번은 미국에서 온 여자가 있었다. 나도 그 여자가 뭘 어떻게 먹었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뭔가 약을 엄청나게 먹고 왔다. 그리고 자기 방에 올라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막 뛰어서 내려왔다. 덜덜 떨면서. 내가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날 보고도 막 덜덜 떨었다. 모든 게 다 무섭다고 했다. 누가 자기를 죽일 것 같다고 했다. 약을 너무 많이 해서 피해망상이 온 거였다. 엠뷸런스를 부르려고 했는데 절대 부르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미국인이라서 문제가 생긴다고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 여자는 그냥 로비 구석에 앉아만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너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다. 그 여자는 그날 밤 내내 그 자리에 앉아서 벌벌 떨다가 아침이 돼서야 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방에 가서 잤다. 멍청한 여자다.”

“다른 어떤 여자는 아예 호스텔에서 사라 진적이 있다. 우리는 그녀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가보니 그 여자가 다른 건물에서 떨어진 걸 발견할 수 있었다. 7M 높이였다. 약에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거기서 떨어진 거다. 엠뷸런스에 실려갔다.”

“여기엔 머쉬룸이라는 것도 있다. 버섯인데 초콜렛에 넣어서도 판다. 그걸 먹으면 시각이 이상해져서 위험하다. 혹시 네가 실수로라도 먹게 돼서 이상함을 느낀다면 미네랄워터에 설탕을 섞어서 마셔라. 깨는데 도움이 된다. 아무튼 그래도 절대 코카인은 손 데지 마라.”

또또또 코카인 하지 말래. 그렇게 말 안 해도 전 약 안 해요 피터 삼촌. 


피터가 담배가 태우고 싶다고 했기에 나도 따라나갔다. 홍등가의 커튼이 내려져있었다.

“저건 손님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피터가 말했다.

“빨간 커튼은 여자고 파란 커튼은 고추가 달린 여자다.”

“파란 커튼도 있다고?”

내가 되물었다.

“응. 조금만 옆으로 가서 봐라.”

그래서 옆으로 조금 돌아가 봤더니 파란 커튼도 있었다. 사진에는 불빛으로 새어 나온다. 역시 커튼은 내려가 있었고. 세상 참 취향도 다양하지. 피터는 이어 주로 남미 여성들이 많이 와서 여기서 몸을 판다고 했다. 어쩐지 호스텔을 찾아오는 동안 본 홍등가 언니들의 몸매가 남다르다했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적자면 다들 정말 크다. 가슴도 엉덩이도 허벅지도.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Thick 한 언니들이 점령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피터는 쟤들은 15분인가 20분에 50유로씩 벌면서 호스텔에 와서 공짜 커피 얻어먹으려 한다고 툴툴거렸다. 그럴 만도 하지. 

“네 방에 있는 애들도 후커(Hooker:창녀)들이다.”

음? 나는 놀랐다.


“내 방?”

“응. 걔들은 콜롬비아 애들이다. 몇 달째 여기에서 지낸다. 쉬프트 마치고 자고 있는 거다. 이따 일나간다.”

아, 어쩐지. 그제야 내 의문하나 가 풀렸다.


나는 호스텔 도미토리에 묵고 있었다. 보통 호스텔 도미토리에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방 이용자들이 거의 배낭여행객이기 때문에 활기가 넘치고 서로 예의 바르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내가 입실한 시간이 8시 9시경이었다면 이미 불을 다 끄고 자고 있었다. 런던의 호스텔 도미토리가 10시나 돼야 불을 끄던 것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미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매우 귀여운 목소리의 얼굴을 알 수 없는 여성이 “아, 네가 넘버 4(내 침대 번호)구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장기 투숙하는 여행객인 줄 알았다.

씻기 위해 공용화장실 문을 두드렸을 때도 “다해가!” 하는 짜증 섞인 고함소리를 들어야 했다. 서로 친절한 배낭여행객들이 모이는 보통의 호스텔에서는 잘 겪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 의문이 풀렸다. 다들 장기투숙객들이고 같은 직업 여성들끼리라 아는 사이니 저런 반응과 행동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고로 나는 의도치 않게 문자 그대로만 말하면 암스테르담의 허름한 호스텔에서 직업여성과,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과 하룻밤을 보낼 뻔했던 것이다. 내가 밤을 새워버려서 하룻밤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웃겼다.


아침이 다가오자 피터는 홍등가 여성들도 퇴근할 시간이 됐다고 했다. 잠깐 자기를 따라 뒷문으로 나오면 호스텔 뒤쪽의 홍등가 골목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를 따라나섰고 밤새 아주 바빴을 그 거리의 묘한 적막감을 피터와 함께 잠시 동안 감상하고 왔다.  

물론 홍등가에도 아침조는 있어서 11시부터는 다시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피터는 그 시간쯤 되면 호스텔 도미토리의 여성들이 일을 하러 나갈 것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이미 떠나서 없을 시간이겠지만. 


독일로 가는 나의 기차 시간이 다가왔기에 피터와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 철분제를 꺼냈다.

물을 뜨러 간사이에 피터가 내 철분제를 봤다. 그는 나에게 피식 웃으며 “너도 샀냐?” 했다. 내가 대마초 캡슐을 산 것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나는 낄낄 웃으며 “이건 내 건강을 위해 먹는 철분제야”라고 말했다. 그는 비슷하게 생겨서 오해했다며 허허 웃었다.

온갖 약물로 자기 몸을 망치는 이들 가득한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철분제를 챙겨 먹으며 내 몸을 아끼고 있었다. 잘했어. 그리고 고마워요 피터.

아침의 암스테르담은 또 다른 도시였다. 깨끗한 도로와 인도로 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런 질서와 무질서의 공존의 이면에는 밤새도록 중독자들을 실어 나르는 구급대원들과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들의 노고 그리고 인간의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양지로 끌어올려 올바르게 관리하는 네덜란드식 실용주의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정말 매력적인 도시였다. 암스테르담.

유럽 유랑하다 중에서


여느Yonu

<여느 예의 없는 세상 생존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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