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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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네덜란드에 처음 도착한 후 2주가 지났을 때 갑자기 친할머니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꼬박 한 세기를 사신 분이었지만 무릎이 안 좋으신 것 외에는 정정하셨는데, 갑자기 걸린 폐렴 때문에 호흡 곤란으로 급하게 응급실에 실려 가신 후 3일 동안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나는 동생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비행기 표를 끊어 할머니의 장례식에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당신의 눈앞에 닥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 그 옆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지금도 크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집 근처에 있는 네덜란드식 펍인 브라운카페에서 와인을 한잔을 마시며 할머니를 추억하고 있을 때 안나를 만났다. 남동생이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어 종종 이곳에 온다는 안나는 검은 가죽 재킷이 잘 어울리는 금발 아가씨였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옆 나라 룩셈부르크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나 또한 몇 년 전 할머니를 보내드린 까닭에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안나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암 투병 중이셨는데 긴 투병 생활을 고통 없이 끝내기 위해 3년 전 안락사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안나는 아직도 할머니와의 마지막 통화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할머니가 안락사를 결심하셨던 당시, 안나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가던 안나에게 전화를 거신 할머니는 “여행 잘 다녀오렴. 나도 이번 삶의 마지막 여행을 하련다”라며 편안한 음성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셨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안나는 지금도 할머니와의 마지막 통화를 할머니와 함께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초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던 할머니의 음성은 안나가 삶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에도 중심이 되어주었다.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바트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모두 안락사를 선택하셨다. 두 분은 건강하실 때부터 병환 등으로 생명을 연장하기가 힘든 상태가 되면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가족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다. 결국 두 분 모두 암 판정을 받고 몇 번의 수술을 거쳐도 차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오랫동안 생각해오신 대로 안락사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정하셨다. 게다가 놀랍게도 바트의 아버지는 안락사 날짜가 정해지자 자신의 장례식 초청장을 직접 디자인하셨다. 초청장의 표지에는 ‘그는 죽었다’라는 짧고 의미심장한 한 문장이 적혀있었는데, 지금도 바트는 아버지가 만드신 장례식 초청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는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이 선택한 장소에서 안락사 전문의를 통해 집행된다.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자택에서 이루어진다. 바트의 어머니도 마지막까지 지내시던 자택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기로 결정하셨다. 안락사를 집행하는 의사는 수면을 유도하는 주사와 심장 박동을 멈추게 하는 두 개의 주사제를 준비해왔다. 두 번의 주사를 차례로 맞으신 후 바트의 어머니는 바트가 태어나고 자라고, 어머니 당신이 평소에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이웃과 담소를 나누던 거실의 의자에 앉아서 바트를 비롯한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삶을 마치셨다.

이제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또 어머니가 더 이상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뒤섞인 아름다운 이별의 순간이었다. 조용히 숨을 거두신 어머니를 바트는 누이와 함께 꼭 안아드렸다. 마치 화려하게 만개했던 꽃 한 송이가 지듯, 마지막 잎이 떨어지듯, 아름다운 음악 선율이 멈추듯 고요하게 숨을 거두신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바트는 자신도 때가 되면 안락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네덜란드에서는 죽음 또한 개인의 선택 중 하나다. 2002년 세계에서 최초로 ‘요청에 의한 생명 종결과 조력자살에 관한 법’을 발효한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30년 전부터 안락사가 관행적으로 진행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는 금기시되는 단어가 아니며, 네덜란드 국민의 약 85%가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다. 2016년 한 해만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수는 6,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사망 원인의 약 4.5%에 이를 정도다.

예전에는 안락사가 주로 신체적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이제는 정신 질환을 앓거나 수명 연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경우에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8년간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40대 남성과,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받아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던 20대 여성이 안락사를 선택했고 의료진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안락사가 결코 쉽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안락사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의 요구가 자발적인 것이고 충분히 숙고한 후 내린 결정이며 환자의 고통이 치유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최근에는 불치병이나 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권리를 선택할 수 있는 ‘조력자살법’ 또한 검토 중이다. 네덜란드 보건 및 법무부 장관도 “신중한 고려 끝에 인생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한 이들이 엄격하고 사려 깊은 기준에 따라 존엄한 방식으로 인생을 끝낼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조력자살 합법화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을 정도다. 더 이상 삶을 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삶을 끝낼 수 있는 권리 또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여전히 삶을 자의적으로 끝내는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또한, 종교적인 입장에서 안락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안락사의 찬반 논란을 떠나서 안락사 그 자체의 의미를 들여다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안락사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묵과해왔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누구나 삶이 진행되는 순간뿐 아니라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오롯이 ‘나’이고 싶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죽음보다 더 괴로운 고통이 심신을 갉아먹기 전에 또렷한 정신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깊고 애틋한 추억과 감정을 나누며 생의 마지막 장을 함께 써내려 가는 것. 안락사를 인생의 한 선택으로 보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보며 어쩌면 안락사를 결정하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임을 보여주는 가장 인간답고 존엄하고 고귀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이죠, 여기는 네덜란드입니다 중에서


작가 소개: 비비안 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네이버 디자인 네덜란드 통신원, 라이프스타일 블로거. 네덜란드 문화와 암스테르담 로컬들이 주로 찾는 핫 플레이스, 네덜란드 일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my_amsterdam_story)을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사회와 문화를 다룬 책, ‘물론이죠, 여기는 네덜란드입니다’를 2017년 출간했다.

서적링크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86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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