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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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 미술관, 죽어가는 꽃의 빛깔

우리 두 사람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여행지 중 하나가 바로 ‘미술관’이었다. 더욱이 벨기에에서도 왕립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흥이 남달랐기에, 암스테르담에서 반고흐 미술관을 가장 가보고 싶었다. 신랑은 고흐의 그림처럼 짙은 노란색 셔츠를 입고 숙소를 나섰다.

반고흐 미술관에 가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았는데, 현장에서 티켓을 사는 것보다는 인터넷으로 미리 구입해 가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가 제일 유용했다. 예매하지 않고 현장에 갔는데 당일 판매분이 모두 소진되면 그날은 반고흐의 그림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미술관으로 향하는 전차에서 티켓 예매에 성공했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야 하느냐를 두고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신랑은 이곳에서만큼은 편하게 감상하자며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하자고 했다. 그래서 2인 입장료와 오디오 가이드 대여료까지 합쳐서 44유로를 썼다.

현장에 도착하니 매표소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는 길에 인터넷으로 표를 구입한 일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신랑과 나는 반고흐 미술관 계단을 내려오며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짐을 맡기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목에 걸고, 드디어 반고흐 미술관에 들어섰다. 고흐의 엄청난 유명세만큼 미술관은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전시관이 아니라 마치 아직 입장을 하지 못한 관람객들의 대기실처럼 혼잡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오디오 가이드였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림 앞에 서서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꽂으면, 그림에 관한 설명이 조곤조곤 들려왔다. 그림의 번호를 누르면, 눈앞에 있는 그림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의 심리 상태, 표현 기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굉장히 복잡한 미술관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그림 앞에 서 있는데도 오직 나만을 위한 전시인 것처럼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도 고흐가 작품 생활을 한 것은 고작 10년 남짓이라는 것, 정신병원에 있을 때조차 거의 하루에 한 작품씩 그려낼 정도로 그림에 몰두하여 생을 보냈다는 것, 자화상을 유독 많이 그린 이유는 모델료를 지불할 돈이 없어 자기의 얼굴을 보고 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흐의 <해바라기>라는 작품(정식 작품명: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Vase with fifteen sunflowers>) 속 눈부시게 노란 해바라기가 사실은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싱그러운 빛깔의 그림 속 꽃이니 죽어가고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그림 속 꽃은 정말 비틀거리며 말라가는 듯했다. 그토록 아름답던 빛깔이 소멸의 빛깔이었다니.

정말 근사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전시관을 나와, 전시관 앞 마트에서 산 사과와 차가운 와플을 뜯어 먹으면서도 작품을 보고 들으며 느낀 감흥에 흠뻑 빠져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한 일은 정말 최상의 선택이었다. 단순히 그림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치열한 인생을 보고 들은 것 같아 온몸과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왜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그의 삶 동안에는 예술이 되지 못하고, 후대에서만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이 되었을까?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고도 슬픈 일일까? 우리는 예술의 아름다움과 삶의 아름다움 사이 간극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고흐의 그림 스타일과 다르지만 신랑도 그림 그리는 삶을 살다 보니 남다르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는 자주 묵연히 미술관 쪽을 바라보았고, 손에 든 차가운 와플을 조금씩 뜯어 먹었다. 어느덧 매표소 앞에 늘어선 줄은 우리가 입장할 때보다 훨씬 더 길어져 있었다.

신랑曰 : 여행 경비 중 꽤 큰 지출이었는데도 오디오 가이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워낙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도 있었고, 아는 만큼 들은 만큼 보인다고 오디오 가이드가 관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고흐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는데, 생전에는 그의 업적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고독했다는 사실에 많이 슬펐다. 일상 드로잉 작가로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멋진 작품을 남기는 것보다 당대에 즐거운 예술가로 사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고흐도 조금 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지 싶었다. 그랬다면 멋진 작품이 후대에 기억되지 않더라도 당대에 스스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관람 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길을 잃어 여행 갑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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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비 부부

일상 드로잉 작가 박조건형과 소설가 김비
처음 손잡은 지 10년, 동거인이 된 지 5년,
법적 보호자가 된 지 3년, 부부 작가가 된 지 2년.
각방 예찬론자이지만 서로의 귀 마사지로 하루를 시작하는
희극이거나 비극이거나 일상이 예술인 부부.
같이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가 있으며
드로잉 유튜브 채널 <박조비TV>를
‘게으르게’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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