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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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욕이 공존하는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하우스의 기억

친구 사이인 클라이브와 버넌은 약속한다.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몹쓸 병에 걸리면 그를 데리고 암스테르담에 가자고. 그리고 그곳에서 병에 걸린 친구를 안락사로 편안하게 보내주자고. 안락사가 법으로 인정되는 곳에서 두 사람은 약속을 지킨다.

영국 소설가 이언 매큐언의 작품 〈암스테르담〉에 등장하는 클라이브와 버넌도 암스테르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마 여기에 서 있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비행기건 기차건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곳.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이라는 호평과 아이강과 암스테르담을 갈라놓은 흉물이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곳.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을 찾아가는 길 또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시작된다. 중앙역 앞 여러 갈래로 얽힌 트램들과 그 건너 암스텔강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중앙역 앞의 첫 풍경은 혼잡하다. 그러나 19세기 말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17세기 길드 하우스와 어우러진 채 파노라마 왼쪽의 웅장한 성 니콜라스 대성당까지 아우르면 암스테르담은 17세기 황금 시대를 구가하던 오래된 상업도시가 아니라 렘브란트와 고흐를 품고 있는 예술의 도시로 바뀐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암스테르담에서 보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20여 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렘브란트가 찬란한 인생의 전성기와 나락의 경험을 함께했던 렘브란트 하우스를 만나게 된다. 이 집은 17세기 초부터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상인과 금융가들이 모여 살던 지역에 지어진 호화주택이다. 렘브란트가 이 집을 구입하기 10여 년 전, 암스테르담 왕궁의 설계자이기도 한 야코프 판 캄펀이라는 사람이 리모델링한 건물이니 오죽할까?

이 집에는 렘브란트의 영광과 오욕이 공존한다. 이 집을 구입할 당시 렘브란트는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미술상으로 활동하면서 적잖은 돈을 벌어들여 꽤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게다가 렘브란트의 집 2층은 그에게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문하생들로 늘 붐볐으며, 그의 최고의 걸작 〈야간순찰〉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렘브란트가 암스테르담에 머물던 시기야말로 최고의 황금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은 렘브란트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아름다운 부인 사스키아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여기에 할부로 구입한 집값을 다 갚지 못해 렘브란트는 파산하고 만다. 채무자들은 집에 있던 렘브란트의 작품과 렘브란트가 수집한 작품까지 모두 가져가 팔았고, 결국 1658년 집은 경매에 넘어간다.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렘브란트는 맨몸으로 쓸쓸히 월세방으로 이사했고, 10여 년 후 참담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니 지금 이곳은 렘브란트를 기념하는 곳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집은 그에게 아픔이었을 수 있다.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암스테르담에는 총 100킬로미터의 운하가 90개의 섬을 만들고, 그 섬들은 1,500여 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된다.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담락 거리와 담 광장을 중심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운하가 나온다. 그 운하 사이사이를 천천히 걸으면 암스테르담의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닥다닥 붙어서 손톱만큼의 틈도 보이지 않는 건물들의 질서정연함과는 달리, 거리의 상점과 카페, 기념품 가게와 길거리 음식점들은 무질서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가족이 산책하는 길에 대낮부터 빨간 조명의 홍등가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아이와 함께 길을 걷던 부모들을 놀라게도 한다. 겉에서는 볼 수 없는 암스테르담의 속살들이다.

암스테르담의 속살들을 음흉스레 구경하다가 발길이 멈춘 곳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드넓은 잔디와 수상 정원을 거느린 이곳에는 〈야간순찰〉을 비롯해 렘브란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지 않은 미술관 안에서 〈야간순찰〉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차피 관람객 모두 2층 222번 방에 있는 〈야간순찰〉 앞에 모여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곳에서는 〈야간순찰〉뿐 아니라 〈사도 바오로의 모습을 한 자화상〉 등 렘브란트의 대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야간순찰〉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의 진짜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민병대〉다. 1640년 렘브란트가 당시 민병대를 지휘하던 반닝 코크 대위에게 직접 그림을 부탁 받고 그린 것이니 확실하다. 그런데 왜 ‘야간순찰The Night Watch’이라 불리는 것일까?

현재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 소장된 〈야간순찰〉은 363×437센티미터 크기지만, 당시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의 크기는 450×500센티미터였다. 민병대 본부 벽에 걸기에는 그림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민병대원들이 렘브란트에게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림을 잘랐다. 이 사실을 렘브란트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다. 또 이 그림이 걸린 민병대 본부에는 석탄 종류인 이탄을 사용하는 난로가 있었는데, 이 난로에서는 엄청난 그을음이 나왔다. 그을음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의 가장자리 부분이 차츰 어둡게 변한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 그림이 야음을 틈타 기습하는 장면이라 짐작하고 ‘야간순찰’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렘브란트가 알았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예술과 함께 유럽의 도시를 걷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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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석원

유럽의 클래식 음악과 인상주의 미술, 오래전 건축물을 좋아하며

그것들을 찾아 돌아다니길 즐겼다.

유럽을 체험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2년 반을 거주

블로그와 SNS로 유럽을 공유하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신문 미디어펜(www.mediapen.com)의 정치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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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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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담으로 야경꾼을 그린 후에 램브란트 인기가 뚝뚝 떨어져서 결국 파산하게 됐다고 해요. 그 전까지 램브란트 그림들을 보면 (다른 작가들의 단체 그림들도) 그림에 인물들이 작가를 보고 있어서 얼굴이 잘 확인되는데요(단체 사진 찍듯이 그런 목적으로 그림을 의뢰했으므로) 야경꾼에서 인물들은 가운데 두어명 빼곤 전부 자기 할일에 바쁘고 작가를 보고 있지를 않아서 그림을 의뢰한 민병대에서 수정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물론 안 해줬지요)사람들은 램브란트가 그림을 이상하게 그린다며 더이상 의뢰하지 않았데요. 지금와서 보면 새로운 시도로 탄생된 명화지만 그 당시에는 결국 작가를 쇠락의 길로 이끈 작품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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